“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누가 들으면 낙관적인 말버릇쯤으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그 말을 꺼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교실 문을 열기 전, 나는 매일같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 말이 내 하루를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의 온도로 움직인다.
어떤 날은 그 온기가 따뜻하게 다가오고,
또 어떤 날은 지독히도 삐딱한 감정이 교실을 가득 채운다.
아이들은 말보다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그 미묘한 틈을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책상 위 교과서보다 더 어렵고,
시험지보다도 더 예측 불가능한 것이
바로 교실의 공기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부터 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그건 아이들을 향한 주문이자,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기도 같은 말이었다.
물론 모든 날이 그렇지는 않다.
며칠 전만 해도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아무리 따뜻한 말을 건네도 삐딱하게 굴던 한 아이.
수업시간에 무표정하게 창밖만 보던 그 아이.
나는 마음속에서 자꾸 물었다.
“왜 이 아이는 내 말에 반응하지 않을까?”
“내가 부족한 걸까?”
그날, 퇴근하려던 내게 그 아이가 다가왔다.
말 없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 저도 잘하고 싶어요.
말은 못하지만, 선생님이 저를 믿어주는 것 같아서요.”
나는 그날, 조용히 교무실에서 눈물을 삼켰다.
그 아이의 침묵 속에도, 말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매일 반복하던 그 말이 씨앗이 되어,
아주 천천히, 그 아이 마음속에 싹튼 건 아닐까.
우리는 너무 자주 ‘결과’만 바라본다.
아이의 성적, 반응, 표정.
하지만 교육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걸
나는 매일 새로 배운다.
그 과정의 출발은 결국 ‘말’이다.
내가 어떤 말을 믿느냐에 따라
교실의 공기도 조금씩 달라진다.
오늘도 나는 같은 말을 되뇐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어쩌면 그 좋은 일은
누군가의 작은 웃음일지도 모른다.
혹은 수업 끝나고 들리는
“수고하셨어요”라는 짧은 인사일 수도.
아니면, 어제보다 조금 더
나를 믿어준 아이의 눈빛일지도 모른다.
말이 씨가 된다는 건,
그 말이 현실을 바꾼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먼저,
내 마음의 자세를 바꾸는 씨앗이 된다는 뜻이다.
나는 오늘도 교실로 향하며,
그 씨앗을 품는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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