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추억은 늙지 않는다, 고향에서 다시 웃다

 

젊은이는 미래를 먹고 살고,
노년은 과거를 먹고 산다.
이제 우리는 하루 한 조각, 추억을 씹으며 산다.

“야, 너 그때 기억나?”
친구의 한마디에
잊었던 시간이 살아난다.
기억은 다시 풍성해진다.

오늘은 부부 동반 강화도 나들이.
친구가 물려받은 한옥집.
세 커플, 딱 좋은 숫자.

반질반질한 마루,
잔디꽃 흐드러진 마당.
오래된 한옥엔 따뜻한 바람이 스민다.

“이 친구, 이렇게 깔끔했나?”
익숙한 얼굴에서 낯선 면을 본다.

장어와 삼겹살이 불판에서 ‘치익’ 소리 낸다.
텃밭에서 금방 딴 상추와 쑥갓.
구수한 흙내, 고기 냄새,
어릴 적 어머니 부엌이 떠오른다.

맥주잔 부딪히며 웃음이 터진다.
추억과 감동이 한데 섞인다.
이 순간, 이보다 좋을까.

그때 친구가 툭,

“야, 니가 그때 울던거 기억나냐?”
모두 웃지만,
나는 잠깐 웃음을 멈춘다.

아, 그런 일이 있었다.

어린 날, 서툴고 아팠던 상처.

뜰에 나와 서 있다.
싱그러운 초록 물결,
과일나무 꽃송이,
은근히 풍기는 고기 냄새.

“언제든 와서 쉬어.”
친구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온다.

도시의 욕심이 스르르 녹는다.
숨겨둔 어린 내가
살짝 고개를 든다.

추억은,
가끔 아프고 부끄럽지만,
결국 다시 나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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