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으로 찐 달걀을 먹다
껍질을 까던 손이 잠시 멈췄다.
그걸 낳은 닭이 문득 떠올랐다.
기계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
알을 낳는 삶.
닭은 그것을 스스로의 운명이라 믿었을까,
아니면, 인간이 그렇게 믿게 만든 걸까.
껍질을 벗기자
새하얀 흰자 속에 노란 노른자가
해처럼 나를 바라본다.
병아리였을 수도 있고,
그저 내 점심이었을 수도 있다.
닭은 정말 이 알을 나에게 주었을까.
아니면, 나는 빼앗은 걸까.
나는 여전히, 조용히 씹으며 생각 중이다.
우리는 알을 삶고,
지단을 부치고,
때로는 화가 나면 그것을 던지기도 한다.
영양이 어쩌고, 피부가 어쩌고 말하면서
정작, “고맙다”는 말은
잊은 지 오래다.
한 번은
고등학생 시절,
친구와 싸우다 달걀을 던진 적이 있다.
그때 깨진 건 달걀이 아니라,
서툰 내 마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주도 알처럼 생겼다고 하지 않던가.
얇은 껍질 속에
언제나 무언가가 자라고 있는 둥근 세계.
닭이 먼저일까, 알이 먼저일까.
그 오래된 질문은
순서를 묻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를 향한 고마움을
잊지 말자는,
조용한 수수께끼 아닐까.
우리의 허기를 채워주는
수백억 마리의 닭들.
그 중 한 마리가 낳은 알을
지금, 내가 먹고 있다.
껍질을 까는 순간,
나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고맙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나를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는지도 모른다.
*관련글 보기
디지털 화면 속에서 위로를 찾는 한 청년의 이야기. ‘다시 시도해 주세요’라는 문장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단풍든 저수지에서 떠올린 부모님과의 기억. 먼저 떠난 어머니, 말없이 남아있던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모두 사라진…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가장 깊습니다. 아버지의 무시, 아내의 무관심, 친구의 배신으로 무너졌지만, 그 아픔…
한 달 시한부 선고를 받은 청년이 항암 치료 중 가을의 은행잎을 바라보며 웃는다. 고통 속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