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고무줄 하나를 묶지 못해 나에게 도움을 청하신 적이 있다.
“예전엔 한 번에 했는데,
이젠 손가락이 말을 안 듣네.”
말끝엔 웃음이 있었지만,
그날따라 눈동자에 아주 잠깐 스친 슬픔이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무줄을 묶어 드렸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작아진 모자, 헐거워진 반지, 오래된 사진들을
상자에 조용히 담고 계셨다.
버리는 게 아니었다.
하나씩 남겨두고 계신 것이었다.
마치 자기 자신과 작별하는 일처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우리는 흔히 늙는 것을
‘잃어가는 일’이라 말한다.
탄력, 기억력, 속도, 자리, 사람,
젊은 날의 열정까지.
그러나 시간이 정말
앗아가는 건 그것들일까?
어쩌면 시간은 우리에게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남에게 보여주려 했던 힘,
채워지지 않던 욕망,
불안으로 덧칠했던 웃음 같은 것들.
요즘 나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설 때 휘청이고,
예전 같으면 금세 회복했을 감기가
며칠씩 머문다.
그런 날엔 이상하게,
자신이 안쓰럽기보다 사랑스럽다.
살아낸 시간이
내 관절과 표정, 자세에
스며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사랑을 하며 떨었던 손,
분노를 참으며 굳어 있던 어깨,
무너지고도 일어섰던 무릎.
내 몸은
내가 걸어온 인생의 지문이다.
어머니는 가끔 내게 물으셨다.
“넌 나처럼 늙기 싫지?”
그땐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늙는다는 건
쓸모없어지는 게 아니라,
본질에 가까워지는 일이라는 걸.
어쩌면 인생은
젊음에 취해 바쁘게 걸을 땐
미처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들을
듣게 되는 속도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느려지기에
더 많이 보이고,
더 깊이 느껴진다.
노화는
그 속도 안에서야 드러나는
또 다른 진실이다.
어머니의 손은
어느새 내 손보다 작아져 있었다.
그 손으로 나를 길러주시고,
마지막까지 내 등을 다독여 주셨다.
세상을 떠나시기 전,
조용히 내게 말씀하셨다.
“이젠 네가 남겨.
잊지 말고.
남긴다는 건 살아 있다는 뜻이야.”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품고 산다.
언젠가 나도
무언가를 하나씩 남겨두게 될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덜 두려워하며,
내 안에 남은 것들로
조용히 나를 완성해가리라.
늙는다는 건
끝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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